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6.25 전쟁/전쟁의 영향 (문단 편집) === 경제적 영향 === 이 전쟁으로 인해 한반도의 경제는 '''박살'''났다고 보면 된다. 안 그래도 1940년대 전반기부터 [[제2차 세계대전]]으로 조선총독부가 물자 공출와 인력공출을 강제하면서 물자가 빼돌려지면서 경제가 안 좋았었고 또한 [[8.15 광복]] 이후로도 [[존 하지]] 미군정 사령관의 무능한 통치로 인해 물가가 폭등, 경제적인 혼란이 가중되어 고물가가 1948년까지 지속되었고 1949년이 되어서야 겨우 수습과정에 들어서면서 경제재건 과정에 들어왔는데 전쟁으로 인해 산업시설이 대규모로 파괴되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했다. 실제로 [[휴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1인당 GDP는, [[한국은행]]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1975년 기준 GDP 통계에 따르면 고작 '''67$'''에 불과했고, 이는 2023년 환율로 환산해도 370$도 되지 않는다[* 더구나 2023년 기준으로 세계 195개국 중 [[1인당 GDP]]가 370$ 미만인 나라는 '''이 통계에서 최하위를 차지한 [[부룬디]](292$) 1개국밖에 없다.''']. 그래서 전쟁 이후로도 국가경제는 이승만 정부가 했지만 국가 경제는 미국의 원조금과 현물 지원을 받아, 그리고 국제지원 물자와 미군부대 불하 물품을 민간에서 유통하며 굴러가는 식이었다. 원조식량이 풀리면서 농업이 피해를 입었다는 말도 이전 버전에 적혀 있었지만, 당시 농업생산력으로는 전국민이 기아를 면치 못했다. '''농촌에서조차 수입 밀가루가 있어도 굶는 판'''이었다.[* 40~50년대 미국의 무상원조, 그리고 60년대 들어 미국이 유상원조로 바꿔간 것은 미국의 국제정책에 의한 것이고, 70년대에 들어서면 한국에 대한 군사원조와 공여도 크게 줄이게 되고 그것이 율곡사업의 동인이 되었다. 미제나 일제를 제 값주고 사기엔 돈도 없으니 국내 생산기반도 허접하지만 한 번 해보자 할 만하다 싶어 만들어보자 한 것.] GDP 감소 수치 자체는 무시할 만했다. 1950년 한 해 동안에만 마이너스 성장을 했고 이후 다시 늘어난다. 6.25는 국가경쟁력과 발전역량을 밑바닥을 떨어뜨릴 만큼 파괴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인적 피해만 300만 이상에 물적으로는 전력 74%, 남한 공업의 60%, 건물 660,100동, 전선 60,766km, 교량 9,312km가 파괴되었다. 해방 후 시점, 당장 식량생산을 위한 비료부터 북한으로부터 들여와야 했을 정도로 빈약한 공업기반을 가진 남한 지역의 경우, 그나마 남아있는 물적 [[인프라]]를 날려먹고 사실상 [[맨땅에 헤딩]]으로 다시 시작한 셈. [* 통계로 본 6.25전쟁.박동찬. 국방부 군사편찬 연구소.2014, 내부부 통계국.1955, 국가기록원][[http://www.imhc.mil.kr/user/imhc/upload/pblictn/PBLICTNEBOOK_201408070704130850.pdf|#]] 하지만 이것이 역설적이게도 일본 우익들이 내세우는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을 반박하는 직접적이고도 효과적인 근거가 되기도 한다. 자세한건 해당 문서를 참고 바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